2. 북경시北京市
중국 ‘5대 고도’(안양․서안․낙양․남경․북경) 중 하나다. 연도燕都라는 이름으로 전해져왔으며, 맨 처음에는 계薊라 불렀다. 서한 때는 광양廣陽이라 불렀고, 그 뒤에는 유주幽州라 불렀다. 요나라 때는 남경南京이라 부르다 뒤에 연경燕京으로 고쳤다. 원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뒤 대도大都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나라 초기에는 대도라는 이름을 없애고 북평北平으로 바꾸어 부르다 영락제 때 북경北京으로 바꾸었다. 그 뒤로 순천부順天府, 경사京師, 경조京兆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다음으로 북평특별시와 북평시라는 이름이 나타난 적이 있다. 1949년 이후 북평을 북경으로 바꾸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로 삼았다.
3. 천진시天津市
명나라 성조 영락 2년인 1404년 ‘천진위天津衛’란 이름이 나타났다. 성조 영락제 주체朱棣가 이곳에서 출병하여 황하를 건너 남하하여 천하를 얻은 다음 자신의 성스러운 자취를 자랑하기 위해 ‘천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천자가 건너간 곳’이란 뜻이다.
4. 하북성河北省
황하 북쪽에 있기 때문에 하북이라 한다. 당나라 때 황하 북쪽과 태행산 동쪽 지구에 하북도河北道를 두었는데 이것이 하북이 큰 행정 구역 이름으로 등장한 시초다. 청나라 때는 직예성直隸省이라 불렀고 1928년에 하북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공禹貢』에서 기주冀州의 땅이라 했기 때문에 줄여서 ‘기冀’라 부른다. 성도省都는 석가장石家莊이다.
5. 산서성山西省
태행산 서쪽에 있기 때문에 산서성이라 부른다. 원나라 때 지금의 북경시에 도읍을 정하고 황하 동쪽 태행산 서쪽을 산서라 부르면서 하동산서도선위사河東山西道宣慰司를 설치함으로써 산서라는 행정 구역 이름이 처음 나타났다. 명나라 초기에 산서성을 설치한 뒤로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춘추시대에는 진晉나라 땅에 속했기 때문에 줄여서 ‘진晉’이라 부른다. 성도는 태원太原이다.
6.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몽고는 원래 몽고고원의 부족 이름으로 당나라 때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 청나라 후기 이후 비로소 내몽고는 대사막 남쪽 장성 북쪽을 널리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1947년 내몽고자치구가 설립되면서 내몽고는 정식으로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성도는 호화호특呼和浩特이다.
7. 요녕성遼寧省
요하 유역에 있다. 전국시대부터 원․명에 이르기까지 줄곧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요’ 자를 행정 구역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1928년 요하 유역을 영원히 평안하게 한다는 뜻에서 요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줄여서 ‘요遼’라 부른다. 성도는 심양沈陽이다.
8. 길림성吉林省
청나라 초기 송화강 연안에 길림오랍성吉林烏拉城(지금의 길림시)을 두었다. 만주어로 ‘길림’은 가장자리, ‘오랍’은 큰 하천이란 뜻이므로 길림오랍은 ‘송화강 연안’의 도시란 뜻이 된다. 줄여서 길림이라 불렀고 길림장군이 주둔한 곳이기도 했다. 청나라 말기 광서제 때(1907년) 길림장군의 주둔지를 길림성이라 불렀다. 줄여서 ‘길吉’이라 한다. 성도는 장춘長春이다.
9. 흑룡강성黑龍江省
흑룡강이란 이름이 처음 보이는 곳은 요나라 정사인 『요사遼史』다. 강 색깔이 검은색이고 흐름이 마치 용이 노는 것처럼 굽이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청나라 초기인 1683년에 흑룡강 유역에 흑룡강장군의 관할을 설치했다. 청나라 말기 광서제 때인 1907년 흑룡강성을 설치했고, 줄여서 ‘흑黑’이라 부른다. 성도는 합이빈哈爾濱(하얼빈)이다.
10. 상해시上海市
상해는 당초 상해포上海浦 연안에서 일어난 도시로, 취락이 형성된 뒤 포구 이름을 따서 상해라 했다. 바다 위에 도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 송나라 때 상해는 이미 상당히 번성한 작은 소진이 되었는데 이 소진의 이름이 상해였다. 아편전쟁 이후 다섯 군데의 통상通商 항구들 중 하나로 개방되었고, 1928년 시가 조성되었다. 줄여서 ‘호滬’라 하는데, 전해오기로 경내의 오송강吳淞江(소주하) 하류 바다 가까운 지역을 옛날에는 호독滬瀆이라 불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상해 서부 지구는 전국시대 초나라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의 봉지였는데 이 때문에 ‘신申’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11. 강소성江蘇省
강녕부江寧府와 소주부蘇州府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청나라 강희제 6년인 1667년 강남우포정사사江南右布政使司를 강소포정사사江蘇布政使司로 고침으로써 강소라는 이름이 시작되었다. 줄여서 ‘소蘇’라 한다. 성도는 남경南京이다.
12. 절강성浙江省
전당강錢塘江이 굽이쳐 돌아가는 데서 얻은 이름이다. 명나라 초기에 절강성이 섰고, 줄여서 ‘절浙’이라 한다. 성도는 항주杭州다.
13. 안휘성安徽省
안경부安慶府와 휘주부徽州府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청나라 순치제 초기에 안휘순무安徽巡撫를 설치함으로써 이 이름이 시작되었다. 줄인 이름은 ‘환皖’인데, 안경부의 별칭이 환이었기 때문에 이를 따서 환이라 한 것이다. 성도는 합비合肥다.
14. 복건성福建省
당나라 때 복건절도사를 두어 복福․건建․천泉․장漳․정汀 다섯 주를 관할하게 했다. 복건은 이 다섯 주 중에서 앞 두 주의 이름의 따서 지은 것이다. 복건은 옛날에는 민월족閩越族의 거주지였기 때문에 줄여서 ‘민閩’이라 한다. 성도는 복주福州다.
15. 강서성江西省
장강은 무호蕪湖와 남경 사이에서 동북으로 흐른다. 수․당 이전에는 습관적으로 장강 북쪽과 회수 남쪽 지역을 강서라 불렀다. 당나라 개원開元 연간(714~741년)에 원래 강남도江南道의 서부를 나누어 강남서도를 설치하고 줄여서 강서도라 불렀고, 강서는 비로소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감강竷江이 전 지역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줄여서 ‘감竷’이라 부른다. 성도는 남창南昌이다.
16. 산동성山東省
산동은 원래 지역 이름이었다. 진․한 시대에는 효산崤山 동쪽을 산동이라 불렀다. 당나라 때는 태행산 동쪽 지역을 산동이라 했다. 송나라 때는 개봉 동쪽 지역에 경동서로京東西路와 경동동로京東東路를 두었다. 금나라 때 중도中都(지금의 북경시)를 설치함으로써 개봉은 도읍의 역할을 잃었다. 이에 따라 경동동로와 경동서로를 산동동로와 산동서로로 바꾸었다. 그중 산동동로가 관할한 구역은 지금의 산동성과 강소 회북 지구였다. 이렇게 해서 산동은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명나라 초기에 산동성이 설치되었다. 성의 영역이 춘추시대 노魯나라 땅에 해당하기 때문에 줄여서 ‘노魯’라 부른다. 성도는 제남濟南이다.
17. 하남성河南省
하남은 황하 남쪽이란 뜻이다. 전국시대에는 하나의 지역 명칭이었다. 당나라 때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황하 남쪽 회수 북쪽 지구를 하남도로 삼음으로써 하남이 처음으로 큰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명나라 초기에 하남성을 두었다. 성 강역을『우공』에서 예주豫州 땅이라 한 데서 ‘예豫’라는 약칭이 나왔다. 성도는 정주鄭州다.
18. 호북성湖北省
동정호 북쪽에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송나라 때 동정호 북쪽에서 형산荊山에 이르는 지역에 형호북로를 두었는데 줄여서 호북로라 부름으로써 호북이란 이름이 시작되었다. 청나라 때 호북성을 두었다. 호북의 무창이 수나라 이후 악주鄂州의 치소였기 때문에 줄여서 ‘악鄂’이라 부른다. 성도는 무한武漢이다.
19. 호남성湖南省
동정호 남쪽에 있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당나라 때 호남관찰사를 두어 동정호 남쪽의 상湘․자資 두 강과 인접한 일곱 개 주를 관할하게 함으로써 호남이란 이름이 생겼다. 송나라 때 호남지구에 형호남로를 두고 호남로라 줄여서 불렀다. 청나라 때 호남성이 생겼다. 상강이 성 전역을 관통하기 때문에 줄여서 ‘상湘’이라 부른다. 성도는 장사長沙다.
20. 광동성廣東省
오대 때 지금의 광동과 광서 지구를 광남이라 불렀다. 북송 초기에 광남로가 설치되었고 그 뒤 다시 동서 둘로 나뉘었다가 후에 광남동로를 광동로라 줄여서 불렀다. 명나라 초기에 광동성이 섰다. 후세 사람들은 광동과 광서, 곧 양광兩廣을 양월兩粤이라 부르면서 광동을 월동이라 불렀기 때문에 광동성의 약칭은 ‘월粤’이 되었다. 성도는 광주廣州다.
21.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명나라 초기에 광서성이 설치되었다. 1958년 광서성을 광서장족자치구로 바꾸었다. 약칭은 ‘계桂’인데 진나라 때 계림군桂林郡을 이곳에 둔 적이 있고 송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광서의 치소가 계주, 곧 계림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는 남녕南寧이다.
22. 사천성四川省
송나라 때 지금의 사천 대도하大渡河 동북쪽과 섬서성 한중漢中 지구를 나누어 익주益州, 재주梓州, 이주利州, 기주虁州의 4로로 나누고 이들을 합쳐 ‘천섬사로川陝四路’라 불렀다. 그 뒤 사천로라 줄여서 불렀다. 원나라 때 처음 사로를 합쳐 사천행성을 설치하고, ‘천川’이란 약칭으로 불렀다. 강역이 춘추전국시대 때 촉蜀나라 땅에 속했기 때문에 ‘촉蜀’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성도는 성도成都다.
23. 귀주성貴州省
성시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당나라 때 설치한 구주矩州를 송나라 때는 귀주貴州로 기록했고, 원나라 초에 정식으로 귀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로 행정 구역을 나눌 때 치소를 귀주라는 두 글자로 이름을 삼았다. 명나라 영락 연간(1403~1423년)에 귀주성이 설치되고 줄여서 ‘귀貴’라 불렀다. 당나라 때는 검중도黔中道에 속했기 때문에 ‘검黔’이란 약칭으로 쓰기도 한다. 성도는 귀양貴陽이다.
24. 운남성雲南省
처음에는 한나라의 일개 현에 지나지 않았다. 한 무제 때 지금의 봉의鳳儀 일대에 색 있는 구름이 나타났다는 소문에 사람을 보내 쫓아가게 했다고 한다. 이 일로 색 있는 구름이 나타난 곳 남쪽에 현을 두고 운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 뒤 운남이란 이름이 행정 구역 이름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원나라 때 운남행성이 설치되었다. 줄여서 ‘운雲’ 또는 ‘전滇’이라 부른다. ‘전’이란 이름은 고대에 곤명 부근이 전국滇國 땅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성도는 곤명昆明이다.
25.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
원나라 때 서장 지구를 오사장烏斯藏(斯는 思로 쓰기도 한다)이라 하여 중앙의 선정원宣政院에 예속시켰는데, ‘오사’는 장족 말로 ‘중앙’이란 뜻이고, ‘장’은 ‘성스럽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청나라 초기에 이 지역이 중국 서부에 있다고 해서 마침내 서장이라 불렀다. 서장변사대신西藏辨事大臣을 보내 랍살拉薩(라싸)에 주둔케 했다. 건륭 18년인 1793년에 「흠정서장장정欽定西藏章程」이 공포됨으로써 서장은 정식으로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신해혁명 후에는 서장지방이라 불렀고, 1956년 서장자치구가 성립되었다. 줄여서 ‘장藏’이라 부른다. 성도는 티베트 불교의 성지인 랍살拉薩이다.
26. 섬서성陜西省
산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주나라 성왕成王 때 왕기王畿 1,000리의 땅(서쪽으로는 경위涇渭 평원에서 동으로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유역에 이르는 지역)을 섬맥陝陌을 경계로 삼아 동서 둘로 나누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섬맥(지금의 하남성 섬현 서남쪽) 서쪽 지역을 섬서라 불렀다. 당나라 때 섬서절도사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이 섬서가 행정 구역 이름으로 처음 나타나게 된 시점이다. 원나라 때는 섬서행중서성이 설치되었다. 줄여서 ‘섬陝’이라 부르는데,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 땅에 속했기 때문에 ‘진秦’이란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도는 서안西安이다.
27. 감숙성甘肅省
성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감숙이란 이름은 11세기에 처음 나타난다. 서하西夏가 그 강역 안에 감甘(치소는 지금의 장액현)과 숙肅(치소는 지금의 주천현) 두 주에 감숙감군사(감군사監軍司란 부나 주와 같은 2등급 행정 구역이다)를 설치했다. 원나라 때 감숙행성으로 고침으로써 감숙은 비로소 성 이름이 되었다. 줄여서 ‘감甘’이라 부른다. 또 성이 농산隴山 서쪽에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농서’ 또는 ‘농우’란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고, ‘농隴’이란 약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성도는 난주蘭州다.
28. 청해성靑海省
강역 내에 있는 청해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청해란 이름은 『수경주水經注』라는 인문지리서에 처음 나타난다. 청해를 옛날에는 서해니 천해니 하는 이름으로 불렀다. 당나라 이후 대부분 청해를 정식 이름으로 사용했다. 청나라 옹정 연간(1723~1735년)에 서녕변사대신을 두었는데, 이 관직이 청해 지구를 관할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청해변사대신이라고도 불렀다. 행정 구역 이름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1928년 청해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줄여서 ‘청靑’이라 불렀다. 성도는 서녕西寧이다.
29.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13세기 중엽 원나라는 서하의 옛 땅에 서하중흥행성을 두었다가 얼마 뒤 이곳을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 영하행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8년 영하회족자치구가 섰고, 줄여서 ‘영寧’이라 부른다. 성도는 은천銀川이다.
30. 신강유오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신강의 원래 이름은 서역西域이다. 서역이란 이름은 대략 서한 선제宣帝 신작神爵 2년인 기원전 60년에 나타난다. 한나라 조정은 이곳에 서역도호부를 두었다. 이로부터 2,000년 넘게 서역은 줄곧 중국 역대 정부가 효과적으로 관할해왔다. 청나라 때 이르러 서역 각지가 청나라로 통일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이 동북이나 서남 지역보다 통일이 비교적 늦었다. 그래서 청나라 통치자들은 종종 이곳을 신강 또는 서역신강이라 불렀다. 이리伊犁장군이 관할하는 천산남북로를 설치했다. 광서 10년인 1884년, 청나라 정부는 정식으로 신강성을 두었고, 이로써 신강성은 정식 행정 구역 이름이 되었다. 1955년 신강유오이자치구로 이름을 바꾸었다. 줄여서 ‘신新’이라 부른다. 성도는 오노목제烏魯木齊(우루무치)다.
31. 대만성臺灣省
성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한나라부터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만은 ‘이주夷洲’ 또는 ‘유구流求’란 이름으로 불렀다. 16세기에는 간혹 ‘대원大員’이란 이름으로도 불렀는데, 이 지역 고산족高山族 부락 이름을 한역한 이름이다. 17세기에 들어서 ‘대원’을 ‘대만臺灣’으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청나라 강희 연간(1662~1722년)에 대만부를 설치했고, 광서제 때 대만성으로 바꾸었다. 줄여서 ‘대臺’라 부른다. 성도는 대북臺北이다.
32. 해남성海南省
섬으로 이루어진 해남성은 줄여서 경瓊이라 부른다. 옛날 이름은 경애瓊崖였다. 한나라 초기에 군을 두었고, 명․청 시대에는 부를 두었다. 1949년 해방 후에는 광동성에 속했고, 1988년 해남성이 되었다. 대만성보다 약간 작은 중국 제2의 섬으로 자연경관이 뛰어나 휴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성도는 해구海口이며 명승고적들이 대부분 이곳 해구에 몰려 있다.
33. 향항香港(홍콩)
특별행정구 홍콩은 오래전부터 중국 땅이었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한나라 때 무덤과 송나라 때 무덤이 발견되었다. 청나라 때는 광동성 신안현新安縣에 속했다가 1841년 아편전쟁으로 영국이 점령하여 1842년 남경조약에 따라 영국 조차지가 되고 말았다. 이어 1898년 북경조약으로 99년 동안 영국 조차지로 할양하게 되었고,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되돌아왔다. 1842년 이후로 따지면 155년 만이었다.
34. 중경시重慶市
줄여서 투渝라 부른다. 중경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일찍이 주나라 때 파국巴國의 도읍지로 봉해졌다. 1977년 직할시가 되었다. 장강삼협을 비롯한 명승지가 즐비하다.
35. 오문澳門(마카오) 특별행정구 주강 삼각주 남쪽 끝 반도에 있다. 섬 두 개를 포함한 면적이 16km2다. 인구는 2012년 기준 약 57만 명이다. 원래 지금의 주해시珠海市인 향산현香山縣에 속했다. 16세기 포르투갈 식민주의자가 화물을 물에 가라앉혔다는 구실로 강제로 상륙하여 마카오를 차지한 이래 서양 열강의 침략 전초기지가 되었다. 1999년 12월 20일 중국에 반환되었다. 관광 사업이 발달한 곳이다.